학술 글쓰기 — 논증의 뼈대를 몸에 익히기
논문을 많이 읽었는데도 막상 쓰려면 문장이 뻣뻣해지는 일이 흔합니다. 학술 문체는 어휘 목록이 아니라 문단이 논증을 나르는 방식이고, 그건 목록을 외워서는 옮겨 오지 않습니다.
분야가 아니라 동작을 배운다
학술 문단은 하는 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선행 연구를 정리하고, 그 안의 빈틈을 지적하고, 자기 주장을 놓고, 근거를 대고, 예상되는 반론을 미리 막습니다. 분야가 달라도 이 동작들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내 분야 논문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동작을 하는 문단을 골라야 합니다. 인용을 어떻게 자기 문장으로 소화하는지가 궁금하다면 그 일을 잘하는 문단을, 반론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궁금하다면 그 일을 잘하는 문단을 가져오세요.
한 문단이면 충분하다
논문 한 편을 통째로 넣으면 대부분 도입부만 몇 번 보다가 끝납니다. 잘 쓴 문단 하나가 논문 한 편보다 낫습니다. 문단 하나에도 주장·근거·연결이 다 들어 있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문단을 고를 때는 자기 글에서 가장 자주 막히는 자리를 기준으로 삼으세요. 서론에서 막히면 서론 문단을, 논의 부분에서 막히면 논의 문단을 가져옵니다.
연결어보다 순서
학술 문체를 흉내 낼 때 가장 흔한 실수는 연결어를 뿌리는 것입니다. however, moreover, furthermore 를 문장 앞에 붙인다고 논증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순서가 어긋난 문장 사이에 연결어가 끼면 읽는 사람이 더 헤맵니다.
먼저 문장의 순서를 봅니다. 이 문장이 앞 문장의 무엇을 받는지, 다음 문장에 무엇을 넘기는지. 순서가 맞으면 연결어는 절반쯤 없어도 읽힙니다.
근거 문장은 반복해서 몸에 넣는다
"A는 B라고 보고했다", "이 결과는 C와 일치한다", "다만 이 해석은 D를 전제한다" 같은 문장은 논문마다 모양이 거의 같습니다. 이런 문장은 매번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몇 개를 확실히 쥐고 있어야 합니다.
쥔다는 것은 뜻만 보고 바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알아보는 정도로는 쓸 때 안 나옵니다. 같은 문장을 며칠에 걸쳐 몇 번 다시 써 보면 그때부터 초고 속도가 달라집니다.
내 문장과 남의 문장을 구분한다
연습에서 원문을 따라 쓰는 것과 논문에 원문을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연습은 표현을 몸에 넣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로 나와야 하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내 문장입니다.
실제 원고를 쓸 때는 인용은 인용 표시와 함께, 나머지는 내 문장으로 씁니다. 연습 단계에서 원문과 똑같이 쓰는 데 집착하지 않는 편이 이 구분에도 좋습니다.
잘 쓴 문단 하나를 붙여넣으면 문장과 표현 단위까지 내려가는 연습이 만들어집니다.
